정치

중국의 인민영웅 레이펑

2018년08월0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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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창시절, 그리고 군 시절에는 꼭 남들이 해내지 못한 일을 해내거나, 빈틈을 보이지 않는 성실함과 능력, 희생과 봉사정신으로 위 아래 모두의 칭찬과 존경을 받는 무리 안에서의 스타이자, 때로는 질투의 눈총을 받는 “모범생”들이 있었다. 보통 우리는 그들을 “교과서”에서 자주 목격할 수 있다.

 

  꽤 오래 전 사람이지만, 거의 60여 년간 중국에서 “모범생”으로 불리는 청년이 한 명 있다.

레이펑(雷锋, 1940~1962)은 22세의 짧은 나이에 교통사고로 순직한 중국 인민해방군 병사로, “노동영웅”, “인민영웅”, “모범병사”라고 불린다. 후난성 창사(湖南,长沙)에서 태어난 레이펑은 일찍이 같은 고향 출신인 마오쩌둥 주석을 존경하여, 마오 주석의 초상화가 걸린 천안문 광장 누각 앞에서 사진 찍기를 즐겨하며 언젠가 그처럼 되리라는 꿈을 품었다.

 

1957년 중국 공산주의청년단에 입단한 레이펑은 1958년 11월 안산(鞍山)의 철강 공장에 들어가 당시 154cm의 작은 키에도 불구하고 트랙터를 운전하는 경험을 쌓으며 주변 사람들의 칭찬을 받으며 모범 소년 노동자로 유명해졌다.  1959년 10월 18일, 레이펑은 꿈에서 마오 주석을 만난다. <雷锋日记>에서 그의 회고에 따르면, 마오 주석은 그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好好学习,永远忠于党,忠于人民 (열심히 배우라, 영원히 당을 위해 충성하고 인민을 위해 충성하라)”

레이펑은 그 날의 대화를 일기에 적고서 한평생 그 이상을 실천할 것을 다짐했다고 한다. 

  이후 1960년 인민해방군에 입대한 레이펑은 수송대에 배치되었으며, 랴오닝성 푸순시(辽宁,抚顺)에서 복무하며 봉급과 관계없이 대량의 시멘트를 옮기는 작업에 헌신하고 자신의 쉬는 시간도 마다하지 않고 뒤처진 동료들을 도와줬다고 한다. 그는 군사 작업 시간 이외에도 일상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기도 하였으며, 자신이 그동안 모은 봉급 200위안을 인민공사 사무실에 기부하였다고 한다.

  그 외에도 1960년 8월 푸순시에 대홍수가 나던 날 아픈 몸을 이끌고 맨손으로 진흙을 파내며 동료들과 함께 홍수를 막아내는 등 레이펑의 선행은 중국 전역에 알려지며 인민영웅의 표상이 된다. 그의 전우와 지인들에 의하면 레이펑은 자신이 다른 사람들과 구별되는 것을 원하지 않았고, 자신의 선행이 외부에 알려지는 걸 원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명성이 중국 전역에 알려지면서 마침내 선양시 위원회에서는 레이펑을 대표단 자격으로 베이징의 마오 주석을 접견할 기회를 제공하기로 결정한다. 그렇게 마오 주석을 직접 만나겠다는 그의 꿈을 마침내 이루어지는 듯했으나, 안타깝게도 1962년 8월 15일 레이펑이 탄 차량이 전신주를 들이받으면서, 그는 쓰러진 전신주에 생을 마감하고 만다.

 

  그 후 그의 생전 일기와 공산당 지도자들의 말을 인용한 글귀가 발견되었고, 1963년 3월 5일 마오쩌둥 주석은 직접 “向雷锋同志学习”(레이펑 동지에게서 배우라)라고 지시하면서 각 도처에 레이펑의 동상이 세워지는 등, 그는 인민영웅의 상징이 되었다. 이후 펼쳐진 문화대혁명(1966~1976) 기간동안 레이펑의 슬로건과 포스터는 각종 신문과 교과서에 인용되며 우상으로 받들여졌으며, 오늘날에도 각종 정부 기관 시설, 지하철이나 엘리베이터의 벽에도 레이펑의 포스터는 각종 공식 캠페인으로 변용되며 여전히 그 효력을 발휘하고 있다.

 

  3월 5일은 “레이펑에게 배우는 날”로 지정되어 학생들이 공원이나 거리를 청소하며 그를 기리며, 고향 창사시와 순직지 푸순시에는 기념관 <雷锋纪念馆>이 설립되어 있다.



(사진출처 : 바이두, 참고영상 : http://m.uczzd.cn/webview/news...)